제8회 진주같은영화제에 놀러오세요

 

 

남사스럽고 송구하지만, 자랑을 좀 하겠습니다. 저의 첫 다큐멘터리 <종로의 기적>이 한국독립영화협회로부터 '2010년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받게 되었거든요. 종로구 낙원동의 게이 커뮤니티에서 만난 네 명의 게이 친구들의 삶을 담은 <종로의 기적>은 작업에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바로 다큐멘터리 자체가 성소수자의 존재를 당당하게 드러내는 커밍아웃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였을까요? '올해의 독립영화상'은 친구들이 건네는 뜨거운 응원의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비성소수자라면 쉽게 가늠하지 못할 커밍아웃이라는 인생의 대전환을 실천하고 있는 출연진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담긴 응원 말이죠.

그래서 상을 받는 자리에서 주책을 좀 부렸습니다. 너무나 기쁘고 즐거운 나머지 "이제 독립영화계가 동성애자를 받아주시는 건가요?"라는 너스레를 떨기도 했어요. 하지만 살짝 고백하자면, 사실 그 멘트는 100 퍼센트 농담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어떤 곳보다 자유롭고 열린 마음을 가진 분들이 영화계이지만, 성수수자를 향한 편견과 차별이 전무하진 않을 테니까요. 성소수자가 이 세상 모든 곳에 존재하듯, 성소수자를 향한 오해와 무관심도 위아래는 물론 좌우 가리지 않고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렇기에 더욱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함께 다큐를 촬영하며 고생했던 고마운 이들의 얼굴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주인공 중 한 명이었던 소준문 감독이 유난히 눈에 밟히더군요. 커밍아웃한 동성애자로서 그리고 독립영화 감독으로서 영화제작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던 준문의 모습은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요. 자신의 성정체성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나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스태프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괜한 오해를 조장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걱정들로 전전긍긍하는 준문의 얼굴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외로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그렇겠지만 영화제작 현장에서도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정체성을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또한 불특정 다수 대 개인의 구도 속에서 풀어야 하는 커밍아웃 이후의 인간관계는 치명적인 외로움을 동반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현실적 조건 속에서 대부분의 성소수자 영화인들은 ‘이성애자’라는 가면 뒤로 자신을 숨기곤 합니다. 남성중심적인 영화 현장에서 왕따를 당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다양한 능력을 펼쳐보일 기회를 박탈 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겠지요.

준문과 저 역시 그런 걱정과 위기감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독립영화인도 아닌 재야영화인’이라며 깔깔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배적 규범으로부터 독립하여 다양성을 지향하는 것이 독립영화의 가치라고 한다면, 성소수자 감독들이 만드는 성소수자 영화는 곧 ‘독립영화의 독립영화’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말이죠. 그런 위로가 지금껏 소수자로 살아온 피해의식의 발로였는지, 적지 않은 차별의 경험 속에서 체득한 자가치유의 방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분투하고, 때로는 분루를 삼키며 준문은 한 프레임 한 프레임씩 컷을 채웠고, 저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호모들의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서 독립영화를 만들고 있는 동료들로부터 뜨거운 응원이 담긴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받았습니다. 이 기쁨을 이미 다큐에 참여했던 많은 분들과 나눴지만, 오늘은 그 기쁜 마음을 다른 분들과 함께 느껴보고자 합니다. 이성애 중심주의가 판을 치는 식민지에서 ‘독립’하지는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성소수자 영화인들과 함께요. 지금은 비록 스스로를 감추고 타인의 삶을 영화에 담고 있지만, 언젠가 그들이 막막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털고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이야기하는 ‘성소수자 영화인 독립의 날’을 기대해봅니다.

/ 글: 이혁상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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