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진주같은영화제에 놀러오세요

제9회 진주같은영화제 초청작으로 9월 9일상영했던 <그림자들의 섬>의 김정근 감독님과의 감독과의 대화 내용을 옮겼습니다.

구민지(진주시민미디어센터 상영 담당):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지.

김정근:
이 사람들이 왜 싸우고 있을까? 왜 싸우는 걸까? 이 싸움은 지치는 싸움일텐데 이걸할까? 의문이 생겼어요. 앉혀놓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왜 싸우십니까? 이 싸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런 것들이 듣고 싶어서 그래서 이렇게 기획을 하게 됐구요. 얘기를 듣는 과정에서 인제 그림자들의 섬이라는 어떤 제목이나 이런 것들이 유추됐던 거죠. 이렇게 하면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고.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얘기를 심리상담 같은 거 보면 그렇게 하잖아요. 앉혀놓고 자기의 통사를 얘기하면서 그 사람이 힐링되는 게 있잖아요. 저는 그 분들이 삼십년을 싸웠던 혹은 2000년대 초반에 들어와서 십몇년 가량 간을 싸웠던 간에 자신의 전체 기록을 기억을 다 헤집어 놓으면서 뭐랄까 일종의 힐링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방식을 통해서 결정적으로는 마지막에 나오는 건 물론 영화에서는 일종의 폐배, 절반의 승리, 폐배 이런 게 있지만 이 사람들이 서 있는 이 자리가 초라하지 않게 보였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그림자들의 섬을 기획하게 됐죠.

구민지:
앞서 앉혀놓고 이야기를 진행한다고 하셨는데, 인터뷰 장면이 굉장히 많이 나오잖아요. 어떻게 보면 한 시간 사십분이라는 영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끌고 가는 게 어떻게 보면 모험일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김정근:
가끔씩 물어봐요. 인터뷰 방식을 선택한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닌가? 그런 차원의 질문은 아니셨겠지만, 인터뷰라는 게 사실은 다큐멘터리의 핵심이고 정수에요. 정수고 핵심인데 그 핵심과 정수를 계속 영화 안에 끌어 놓는다는 방식은 사실은 큰 모험이기도했고, 원래는 제가 5년 정도를 촬영했으니까 촬영분량이 꽤나 많이 있을거 아니에요. 그거를 다 포기하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어요. 그래서 그러면서까지 내가 뭘 하고싶은가를 고민해봤을 때 이 사람들이 그냥 평범한 노동자였을 때를 많이 부각시키고 그 한진이라는 사업장의 한 이야기가 한 레이어가 있다면은 그 위에는 한국의 사회가 변화는 모습, 그것이 하나의 레이어 일 것이고 그 위에는 그 두 개의 레이어 이외에 이제 한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본 깔리는 거죠. 한진노동조합의 이야기말고. 개인 미시사와 한국사회라는 거시사가 이러게 맞물려서 이야기가 그렇게 파장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인터뷰라는 형식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지루할 수도 있고 혹은 굉장히 큰 위험성이 있었지만 중간에 옛 이야기를 많이 다듬기는 했거든요. 편집과정에서. 근데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있겠다 생각했던 거는 기본적으로 한진중공업이라는 사업장의 아우라가 있고 기존의 큰 역사적 질곡이 있고 개개인들이 가진 저와의 관계에서 제가 봤던 어떤 빛나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어요. 보통의 인터뷰물이나 이런 거 보면은 제이티씨 뉴스룸 강동원 10분 보면 안 지루하잖아요. 송혜교 10분 보면 안 지루해요. 왜냐면 예쁘고 잘생기고 그 사람들이 굉장히 신비스러웠던 존재였기 때문에 그런데 저는 그거보다는 이게 더 저한테 맞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어떤 노동자의 이야기를 좀 오래 듣고 싶었고 그 이야기의 힘을 믿었던 게 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죠.

구민지:
저도 영화를 보면서 인터뷰 형식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더라고요. 각각 개인이 가진 캐릭터나 힘이 있기 때문에 괜찮았고 특히 김진숙 님이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넘치는 그런 분이라고 느꼈는데 실제로도 유대관계가 좀 깊이 있으신지.


김정근:
저는 굉장히 깊은 유대관계는 없어요. 저는 굉장히 어렵고 무서워하는 분이라 기존의 김진숙을 보면은 저도 부산에서 활동하면서 꽤 오래 뵀던 분이긴 하지만 내 편 네편이 확실히 구분되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정치적견해라든가 노동조합에서의 활동이라든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 굉장히 좀 사람을 가지치기 해가면서 활동을 해나가던 그런 분이셨는데 희망버스 이후에 이 분이 삶의 태도라든가 아니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 거에요. 그러면서 얼마 안되는 노동자들과 소수의 진보세력 혹은 이걸 지지해주는 되게 많은 대중들과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이고 저 또한 그 범주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한 5년 정도 형님을 쫓아다니면서 늘 상주하면서 촬영했던 것이니 저한테는 약간 믿음이 생기신거죠. 그 정도의 헌신성이면은 이 친구한테 터 놓고 얘기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드셨던 것 같고 더불어서 제가 기분 좋았던 순간은 사실은 그 중에 하나가 저를 소개해주실 때 얘는 거의 한진조합원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얘기했던 순간이 저는 제일 기분이 좋았던 거거든요. 물론 이제 그것이 다큐멘터리로서의 객관적 거리와는 별개의 문제로 그래서 그런 뭐랄까 일종의 친분, 친밀성은 충분히 갖추고 얘기했던 것 같아요. 


구민지:
뭔가 밀착을 해서 들어가시잖아요. 5년 정도 밀착 촬영을 하셨는데 그게 5년이 참 긴 시간인데 그 동안 지치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있으신지 또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

김정근:
편집까지의 시간이 5년이었던 거고 제가 완전히 거기 상주하듯이 맨날 왔다갔다하면서 살지는 않았구요. 희망버스 이후와 뭐 이정도까지가 형님들과 자주봤던 시간이었거고. 힘들었던 순간은 여기는 김주익, 박재규, 혹은 박창수라는 사람이 죽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분개하고 자신의 옆에 있던 일하는 동료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잖아요. 같은 사업장에서 정말 땀 흘리고 이제 도시락 먹어가면서 근데 저는 개인적으로 저는 강서형이 그런 느낌이었어요. 저는 그 분들의 심정과 슬픔에는 당연히 비할바가 아니지만 저는 돌아가시기 한 이틀 전까지도 술을 하고 소주마시고 술값 계산하고 가시고 천막에서 같이 지내면서 같이 얘기듣고 했던 형님이신데 자주 봤던 사람이 죽으니까 나도 이런 감정이 생기는거에요. 그게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순간이었고 그러면서 편집한다고 그 과정을 찍어 놓고 앉아가지고 봐야 되잖아요. 근데 약간 견디기 힘들었던 거죠.

구민지:
굉장히 괴로우셨을 것 같은데

김정근:
굉장히 괴롭지는 않았어요.

구민지:
제가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고 관객여러분들께 질문을 넘기겠습니다. 이건 굉장히 개인적인 질문인데요. 어떻게 보면 제가 영화를 보면서 제가 그 분들을 지지는 하지만 왜 자살을 하지 왜 저렇게까지하지,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그런 마음 용기가 없다든지 현실적인 문제 그런 것들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를 포함해서.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김정근: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던데요. 이 영화는 죽음을 종용하는 영화지 않냐 이렇게 얘기도하더라고요. 어떤 차원에선. 저는 그렇게 감정적으로 다가갈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대게 많은 자극적인 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덜어냈고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죽는다는 게 굉장히 큰 일이잖아요. 그 상황을 어떻게 짜여가느냐 만들어져가느냐를 더 눈여겨 봐야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예를 들어 김준익 열사가 돌아가실 당실에 회사는 손배관비를 어마어마 무시한 돈을 때려놨었고 더불어서 점점 줄어드는 노동조합의 숫자에서 이 사람이 남아있는 조합 간부들이 김주익 지부장과 손배가압류나 또는 손해배상을 계속 때려놨었어요. 그래서 이 집행부가 그냥 끝나버리면은 이 사람들은 폐배한 집행부로서 고스란히 감옥에 갔다가 나와서는 생활을 해야되는 사실 되게 비참한 죽을 수밖에 었었던 구조가 만들어졌던 거죠. 

강서형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회사가 제기한 158억원의 손배가얍류나 혹은 복수노조를 만들어서 사람들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이런 거는 되게 욱하는 성미의 사람이나 정리해고를 겨우겨우 이겨낸 사람들의 성미에서는 사실 견디기 쉽지 않은 환경인거죠. 자살로 몰아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이거는 어떤 굉장히 용기있는 사람의 자결이 아니라 제가 봤을 때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보는 거에요. 그래서 이거는 뭐라고해야 되나? 


구민지:
어떤 불가피한 구조적인 문제

김정근:
그렇게 보는 것도 있고, 그것이 일종의 용기라고 표현한다면은 모르겠어요, 저는. 용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용기를 내서 그걸 선택했던 정황들이 중요한거죠.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구민지:
그 분들이 그 사람의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자살을 할 수밖에 없었냐는 그런 상황적인 문제들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제가 질문이 아직 다섯개 여섯개 궁금한 게 있는데 일단 관객분들이 궁금한 게 더 많으실 것 같아서 질문을 먼저 받아볼게요.

관객:
하필이면 한진중공업을 선택해서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셨는지.

김정근:

옛날에 제가 한진중공업에 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공고 출신이에요. 공고 그만두고 나와서 인쇄소 공장에도 일을 했었고. 한진중공업이 2000년대 초반까지는 부산권역 내에서는 괜찮은 회사였어요. 2003년 김준익 열사 돌아가셨을 때에는 제가 장례식장도 갔었고 크레인 위에 올라가서 조문도 하고 갔었거든요. 그런데 제 기억에 어떤 선배가 당시에 크레인에 살아 계실 때 고 상황을 조금 찍어서 인터넷이라도 올려보면 어떻겠니라고 했었는데 제가 나이도 어리고 게으른 편이라서 안했어요. 근데 한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거든요. 그분이. 

개인적으로는 어린 나이에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었어요. 혹시나 다시 한 번 이런 상황이 도래하거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은 한진중공업에 가서 찍어야 되겠다는 마음의 앙금같은 것이 있었고, 2009년에 쌍차 파업을 갔죠. 쌍차파업 아시잖아요. 옥쇄파업이라고 해서 너무 유명한 장면있잖아요. 헬기에서 체류액이 떨어지고 특공대가 막 패면서 노동자들을 땡겨가는 장면들을 보면서 만약에 한진도 저런 상황이 생기면은 내가 꼭 가서 기록을 하고 공유해야겠다 사태 진작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근데 아니나 다를까 그 이듬해 정리해고 발표가 난 거에요. 진짜 큰 고민 많이 없이 그냥 카메라 들고 부산시청 집회현장에 바로 가서 촬영을 시작했어요. 그렇게해서 인연이 됐고 한진을 찍게 된 거에요. 그래서 여러모로 한진과 저도 조금 인연이라면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구민지:
말씀 잘 들었구요. 혹시 다른 질문 있으신 분 있으신가요?

관객:
학생인데, 제가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거든요. 어떻게 활동을 해야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조금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한진중공업 그 분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운동해야하는지 그걸 좀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정근:
제가 계좌번호 알려드릴게요. 제일 좋은 건 돈 쏘시는 겁니다. (일동 웃음) 제일 좋은 거는 아시겠지만 그런 거고. 물질적 지원이 제일 중요하고, 개인적으로 이야기하면. 근데 이제 그런 거잖아요. 청년세대들 저 사실 최근에 이제 서울에서 흑수저당, 민중연합당, 녹색당, 노동당 막 이렇게 해서 청년단들이랑 모여서 상영회를 했어요. 그때 비슷한 톤의 질문이 나왔어요. 청년들이 이 시기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 혹은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문의를 많이 하더라고요. 사실 저도 정확한 답을 몰라서 답을 못드렸잖아요. 이건 오래된 미래잖아요. 지나간 일이었고 어떻게 보면. 이미 이 조합원들은 개별노조에 속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에요, 사실은.

 왜냐하면 중공업 계열 조선소도 이미 어려운 일이 엄청 많은데 뭐한다고 젊은 노동력을 다시 한 번 재고용하겠어요. 선박 수주가 굉장히 많이 들어오거나 다시 한 번 중공업 계열의 붐이 세계 경기가 좋아져서 붐이 일어난다면 모를 일이지만. 그럼 지금 대기업 노조에 속하지 않은 청년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고민을 했을 때는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거를 계속 고민해야 되요. 청년들은. 그게 이제 그 당시에 제가 지난 번 모임에서는 정당을 파티를 구성해서 정당활동을 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혹은 일터에 대한 어떤 문제를 느낀다면은 정말 알바 구조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급 1만원 올리기 투쟁 있잖아요. 이런 걸 같이 하든가 그런 캠페인을 벌이든가 온라인에서 활동을 하거나 이런 것들이 내가 지금 대기업 노동자들을 구조해내거나 이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다른 어떤 방편을 고민하는 것. 

사실은 그 사람들의 운동을 도와주는 건 굉장히 의미 있긴 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가에 대한 고민이 막 생겨요 저는. 그래서 청년 세대는 청년 세대의 담론에 맞게 운동을 하시는 게 중요할 것 같고 또 그런 것도 있어요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냐면은, 정당이나 이런 거에 관련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되게 기존 정당들 잘 아시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되게 많은 정당으로 진보세력이 찢어졌잖아요. 그런 상탠데, 진보세력 이런 거 막 이야기해도 되나요? (웃음) 그런데 사실은 그게 기성 정치의 문제란 말이에요. 기성 정치라 했을 때 흔히 386세대나 지금 앉아 계신분들의 아버지 세대의 정치의 어떤 문제에요. 제가 봤을 땐. 그럼 그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기성 정치의 테두리나 맥락 안에서 계속 하려는 건 전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많은 젊은이들이 젊은 세대의 문제를 되게 유효하게 끌어와야 되요. 그래서 예를 들면, 째져있는 정당이라 했을 때 청년들이 모여서 뭘할 수 있을까 고민해보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갈라 놓은 정당의 문제를 그냥 여기 있는 청년들이 다 같이 연대해서 어떤 걸 같이 해볼 수 있는지 얘기해보고 이런 거가 중요한 거 이런 거 근데 제가 너무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죠? (좌중 웃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알아서 잘 하세요. 허허허. (좌중 웃음)

구민지:
저도 그런데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이번 영화를 계기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근데 아까 진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영화가 진보적인 색채를 띠고 있잖아요. 그래서 상영관을 잡거나 상영을 하는 기회를 만드는 게 혹시 조금 힘든 경우는 없으신지.

김정근:
개봉 자체가 오래걸렸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어요. 이거는 정황이긴한데 원래 이렇게 이야기하면 좀 재수없긴 하지만 서독제 대상 정도 받으면은 사실은 개봉을 하기가 이전에는 되게 쉬운 편이었어요. 독립영화제에서 최고상이니 죄송합니다. (일동 박수) 근데 이제 최근의 정황이 독립영화나 정치적 색채를 띠는 영화들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그거를 여러가지 제도적으로 강제해서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거죠. 예를 들면, 독립영화 지원을 끊어버리고 이런 작은 소규모 예술전용관 지원을 다 끊어버리고 이런 상황으로 점점 치닿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플러스알파로 개봉관을 잡기가 쉽지 않은 편이죠. 예전에는 위안부 다큐멘터리가 심지어 CGV에서 개봉하고 이런 기억도 있어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이런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그리고 제 기억으로는 CGV에서 봤었거든요. <우리학교> 이런 것도 CGV에서 봤었요. 물로 제 영화도 CGV에 들어 가기도 했어요. 딱 두번 들어 갔었어요. 압구정이랑 부산 서면. 그런 상황이 오는 거죠. 점점 이런 영화들은 보수 영화의 채널 속에 포섭되서 그 영화 대신 이 영화를 틀 수 없는 여건들 그렇게 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구민지:
그래서 저희가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 작품을 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고요. 그러면 다시 한 번 관객분들의 질문을 받아 보겠습니다.

관객:
현장에서 촬영을 하고 하셨으니까 비정규 문제에 대해서 고민이 있었는지


김정근:
대게 중요한 문젠데, 그렇죠. 비정규직 사업장들에는 그만큼 힘을 못 실었던 게 있고 게다가 지금 조선도 같은 얘기기는한데 여기 마지막 자막에 나왔던 63,000명 정도의 정규직 비정규직 포함 노동자들이 짤려나간 상황인데 잘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거제니 이런데는 이미 많은 하청노동자들 특히 물량팀이라 불리는 날품팔이로 하루하루 일 하고 계시는 그런 상황인데 이 이야기들은 사라지고 없는 이야긴거에요 점점. 게다가 이 것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이 짤려나가는 상황에 대해서도 다들 함구하고 계시고. 그 상황이 조금 안타깝죠. 저는 고민 중인 게 뭐냐면은 말씀하신 것처럼 비정규직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당시 투쟁에서는 따라가기가 너무 버겁고 제가 비정규직까지 다룰 수 있는 저의 깜냥이 안 되기 때문에 다음작품에서는 그런 것 좀 해볼 생각이에요. 오히려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훨씬 깊어졌죠. 개인적으로. 구민지:
다음 작품에서 해보신다고 하셨는데, 다음 작품은 어떤 건지.

김정근:
제가 약간 노동자라는 특정 계급군에 홀릭한 사람은 아니에요. 제가 한진중공업을 좋아했던 이유는 뭐라면 제가 개인적으로 철이나 쇠 덕후이기도 해요. 큰 배, 철도 그런 것들 엄청 좋아해요. 그런 걸 만드는 사람에 대한 경외감도 갖게 되는 거죠. 쇠와 인간의 대결 이런 건 사실은 오래된 이야기잖아요. 그건 오래전부터 무언갈 만들었을 때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에는 그걸 짓는 사람들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있는 거죠. 제가 지금 지하철이라는 공간을 찍고 있는데요. 부산도 약간 마찬가지에요. 지하철 공간이 저한테는 약간 특이하고 신기하고 스펙타클한 공간이라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지하라는 공간을 다니는 지하철의 이야기를 도시와 엮어서 해볼 생각인데 조금 어려운 프로젝트라서 고민 중이긴해요.
관객:
결국 감독님이 기록하신 것은 사람에 대한 삶인 거잖아요. 다큐멘터리라는 게. 이걸 알 수 없는 수단이 없어서 그런데 이런 것을 초 장시간 찍으시면서 감독님의 생계나 이런 건 어떻게 되는 건지.

김정근:
생계는 알바해요. 알바. 저희 다큐멘터리 만드는 사람들이 삶이 팍팍하거든요. 홍보영상을 찍기도 하고, 디자인 같은 것도 제가 애지간히 해서 디자인 작업을 하기도 하고. 영화를 찍을 수 있게 지원제도가 약간 있어요. DMZ 다큐멘터리영화제나 영화진흥위원회나 작품에 관해서 어프로칭하면은 지원을 하는 형태죠. 여담이기는한데 아이러니긴한데 그렇게 이야기하는거에요. 다큐선배가 야 너는 월 100도 못 벌면서 월 200이상 버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힘들다고 하면 모순아니니? 맞는 거에요. 그말 듣고 나니까. 그런 게 조금 있어요. 이게 영화라는, 특히 예술영화라고 불리는 특정 군락 중에서 다큐는 특히 더 외곽이라 사실 이거를 지켜가는 것이 조금 쉽지 않은 사정이기는 해요.

구민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다큐멘터리를 계속 찍어나가게 만드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김정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차원에서는. 좋아서 하는 것 같아요. 좋아서 하는 것 만큼 좋은 게 없고. 저는 이전에 다른 직장도 여러가지 해봤어요.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는 안해봤지만은 그외 공장도 다녀봤고 사무실에서 일도 해보고 이거 만드는 과정에서는 제가 미디어 관련한 기업 안에서 일도 했었거든요. 미디어교육도 다니고, 여기 진주센터랑 거의 유사한 활동도 많이 했었는데 제가 이것저것 일을 해보면서 느꼈던 건데 제가 하는 일 중에 이게 제일 재미있는 것 같아요. 제일 재밌고 관객도 만날 수 있고 큰 돈을 벌지는 않지만 그거에 욕심이 없다면은 이걸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리고 저는 다큐를 되게 좋아해요. 좋아해서 하는 것 같아요.

구민지:
결국 즐기면서 좋아하는 일이 이거네요.

김정근:
즐기진 않습니다. (웃음)

구민지:
즐기진 못하시고 좋아만 하시는 걸로. (웃음) 힘들지만 좋아서 하시는 걸로 그렇게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관계로 마지막 질문 두 가지만 받겠습니다.

관객:
저는 하진중공업 사례를 다큐멘터리로 만든다고 해서 정말 보고 싶어서 심지어는 부산까지 가서 봐야 되나 창원까지 봐야되나 이런 생각을 조금 많이 했다가 미디어센터에서 상영한다길래 바로 달려와서 보러왔거든요. 다른 게 아니라 제 삶을 생각해보면은 노동 문제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졌던 게 2003년 김주익 지회장님이 사망하셨단 뉴스를 보고 그때부터 뭔가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 가지고 살고 있다가 2011년 희망버스가 막 시작될 때 제가 부산에 있는 동아대학교에 다니고 있었어요. 그래서 매번 이제 그전에도 한진중공업에 소속된 아저씨들하고 만나기도 했고 수업이 끝나면은 매번 영도조선소 앞에 가서 농성도 같이 하고 용역들하고 같이 몸싸움도 하고 이런 걸 같이 겪었었는데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조금 아쉽다는 생각도 조금 했었어요. 사실 118분이라는 제한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단 생각도 들기도 하지만 아쉬웠던 점이 몇 가지가 있었다면 사실 저도 한진중공업 아저씨들하고 만나서 얘기를 여러 번 해봤지만 개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거잖아요 저게. 

두 가지 점이 조금 아쉬웠는데 하나가 스토리를 듣다보면은 노동조합을 결국에 중심에 둘 수 밖에 없잖아요. 노동조합에 활동을 하신 분들이었고 그런데 중간중간 노동조합이 어떻게 규합됐다가 해산됐다가 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너무 없었다라는 생각도 좀 들어요. 예를 들면은 2011년 당시에 최길용 씨 지도부가 사측과 내통을 하고 뒤에 복수노조 설립에 가장 앞장섰다라든지, 그런 비하인드스토리가 많이 있잖아요. 그것도 결국엔 노동조합의 역사에서 중요한 내용들인데 그런 게 좀 빠져있었다는 게 아쉽고요. 두번째는 하청노동자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2011년 당시 김시 지도위원 님이 크레인 고공농성 당시에도 그 당시 거제 강병제씨가 철탑 위에서 하청노동자로 농성 같은 걸 계속 이어나가고 있었어요. 그때. 근데 그런 사례들을 끊임없이 크레인 위에서 지금 거제에 강병제씨가 비 맞고 농성하고 있다. 이런 얘기를 계속해왔는데도 불구하고 강병제씨는 스스로 동력이 없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잖아요. 근데 영화에서도 제가 바람이 있었다면 하청에 계신 한두 분 정도는 이야기를 담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걸 담았으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왜 노동조합에서 이런 지원을 안해줬다라든지, 하청에서 바라보던 입장은 이랬다든지 이런 게 조금 들어갔다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조금 하게 됐습니다.

김정근:
그렇죠. 할 수 있다면 아주 좋았겠죠. 근데 아시겠지만 하청분들이 1년씩 계속 고용연장을 위해 재계약하는 구조에요. 남아있던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고, 당시에 집행단에 있던 사람들이. 이건 좀 다른 차원이기는 한데 복수노조도 사실 찍으려고 섭외를 했었어요. 근데 안 했죠. 그 사람을 세워서 영화 안에서 일종의 배신자를 만드는 거잖아요. 윤리적 문제가 생기는 거에요. 개인적으로. 하청문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 분은 섭외를 할 수 있으나 그 분의 삶 자체가 훨씬 곤란해질 것이라는거죠. 왜냐하면 계속 하청을 연명하고 있을텐데 그렇게 찍힌 이후에 그 사람이 다른 하청을 구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거죠. 

앞서 거제조선도 마찬가지지만은 거제나 이런데서 제일 먼저 짤려나가는 분들이 조합활동하시던 분들이에요. 그럼 내가 그런 블랙리스트를 또 한 번 올리는 형태가 되니까 굉장히 위험한 일이어서 이런 여러가지 현실적 변수가 있어요. 두 번째 최길용 집행부 당시는 그건 저의 전작을 보시면 나오구요. (웃음) 나오긴하는데 30년 사 안에서 최길용 집행부는 큰 문제는 아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왜냐하면 그런 법목이야 노동조합 안에서는 늘 있는 일이고 그걸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훨씬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죠. 되게 많은 정보가 탈락됐어요. 한진 조합사 안에서는. 한진조합사 관련한 책이 있어가지고 제가 83년부터 쭉 봤었는데 영화에서 담은 거는 그 역사의 10%도 안될거에요. 따지고 보면은. 그래서 조금 공란이 있거나 그런 것들은 가능하시면 찾아보시면 훨씬 상세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라. 

모르겠어요. 저는 영화가 할 수 있는 몫이라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이 이야기 안에서의 방점은 한국사 안에서 되게 중요한 양상이었던 변곡점이었던 비정규직 양산아니에요. 2003년 노무현 정부 당시의 문제. 그리고 박창수 열사를 잃은 90년 후반의 역사,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의 민주노조 설립 과정의 문제, 설립 과정의 역사 이런 것들이 훨씬 저한테는 중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영화에서는 누락이 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 아시니까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구민지: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시다 보니까 다 담지 못하신 것 같구요. 그리고 관심이 많으신 것 같은데 감독님 전작 <버스를 타라> 2012년도 첫 작품이죠. 그걸 찾아보시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관객:
다큐멘터리를 그렇게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김정근:
그런데 저는 사실 극영화도 엄청 좋아하거든요. 영화도 많이 보는 편이고 특히 고전영화도 엄청 좋아해요. 다큐멘터리만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저는 저한테 맞는 것 같아요. 다큐를 작업하는 게. 오히려 극 영화가 주는 되게 어떤 즐거움도 있지만 다큐멘터리가 주는 즐거움이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큐를 선택해서 하는 것 같고. 예를 들면, 오늘 여기 폐막작으로 <태풍이 지나가고>의 히로카즈도 사실 다큐멘터리 하는 사람이에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티키다큐했었고. 허샤우센이라는 대만의 유명한 거장 감독을 티비 다큐를 만들기 위해서 찾아가서는 허샤우센에게 감명을 받아 환상의 빛이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었고. 

그것의 경계가 저한테는 굉장히 뚜렷하고 차이가 대단히 커서 다큐를 꼭 고집해야돼 이런 순혈주의자는 절대 아니고요. 그런데 영화라는 거대한 틀거리 안에서 다큐 작업이 저한테는 맞고 훨씬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서 그걸 하는 것 뿐이에요. 좋은 다큐 많습니다. 한국에는 좋은 다큐 많아요. 독립다큐 많이 좀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구민지:
마지막으로 감독님 오늘 오셔서 어떠셨는지 진주시민미디어센터 저희 영화제 찾아오신 소감이 어떠셨는지 소감 간단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정근:
영화제 이름 너무 예쁘잖아요. 진주같은영화제, 이름이 반짝반짝 빛날 것 같고 그래서 실제로 와서 뵈니까 되게 사실 평일 낮 시간대 이렇게 찾아오기 힘드신데 이렇게 관객분들 빛나는 눈을 보니까 너무 고맙고 그래서 다음 영화도 잘 만들어서 다시 한 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민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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