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진주같은영화제에 놀러오세요

지난 12월 18일 독립영화관 인디씨네에서 <나쁜 나라>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날 감독과의 대화에는 김진열 감독님과 세월호 참사 유가족 중 단원고 5반 건우 군의 아버님 김광배 님이 참석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쁜 나라>의 배급사인 시네마달의 담당자님께서도 먼저 도착하셔서 관람객분들을 위해 시네마달에서 준비해오신 리본 진열을 비롯 진행을 도와주셨습니다.


<나쁜 나라> 감독과의 대화 기록은 감독님보다 실제 당사자이신 건우 아버님의 육성을 옮기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왜 싸우고 계신지, 싸울 수밖에 없는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우리 몫은 무엇일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같은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두 눈 밝혀 건우 아버님의 목소리를 들어 보겠습니다.


진주 내려오면서 굉장히 떨렸습니다. 왜 일까 몰랐는데, 여러분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관람을 해줘서 좋습니다. 학생들이 꿈이잖아요. 오늘 오신 여러분들을 보니까 기분이 정말 좋습니다.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이 지금은 명예 3학년 몇 반으로 표찰이 걸려 있구요. 교실 안에는 우리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이전 모습 그대로 간직되어 있어요. 그리고 참사 이후에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기원하는 마음, 그 마음을 쪽지에 적어서 많이 붙여 놓았어요. 저희는 그 교실을 ‘4.16교실’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최소한 여러분들은 저희 유가족들과 똑같은 마음일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교실 문제가 대두가 된 거는 지난 5월이었습니다. 단원고에는 ‘단원고대책위원회’라는 게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작년 11월까지 회의를 두어 차례 회의를 한 후에는 회의를 한 적도 없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교실 존치 문제에 대한 문제가 대두가 안 된 상황이었어요. 왜냐하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우리 아이들이 있고, 또한 선생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대두가 안 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교육청에서도 그렇고 학교측에서도 그렇고 그때까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전혀 얘기가 없는거에요. 시간은 지나가고 아이들의 졸업일자가 정해지고 우리 아이들 졸업이 처음에는 1월 11일로 졸업일자가 정해졌어요. 후에 1월 12일로 변경됐지만. 11일로 졸업 일자가 정해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다들 생각하시듯이 그 교실 리모델링해서 신입생들의 교실로 사용하려고 했던거죠. 교육청에서도 그렇고, 학교에서도 그렇고. 

5월이 되서 저희가 교육청에 문의를 했습니다. 지금 이 교실 어떻게 대안이 있느냐. 그 당시 지금의 교육감이 학교 뒤쪽에 사유지인 야산이 있는데 야산을 매입해서 체육관을 짓는데 한쪽에 아이들 추모관을 만들겠다. 아이들 교실에 있는 책상이라든가 소지품을 가져다 놓기로 얘기가 됐어요. 저희 부모들은 그렇게 알고 있었죠. 그런데 5월이 지나가도록 다른 얘기가 없고, 교육감이 한 마디 하더라고요. 땅주인 땅을 안 판답니다. 그럼 대책이 뭡니까, 대안을 주십시오. 그게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시간을 끈 게 지난 9월이었습니다. 그럼 4~5개월 동안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저희가 제촉을 하니까 대안이 없대요. 유가족들과 재학생 가족들이 협의된 대로 따라가겠다하더라고요. 저희가 그래서 안을 만들어 제출을 했습니다. 

지난 주에 저희 가족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교육청과 학교로 보냈습니다. 절대로 애들 교실 없애지 못한다. 교육감 본인의 입으로도 교실은 물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빼지 않겠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책이 없는거죠. 저희가 제시한 안은 공사기간이 3~4개월입니다. 교육청에서 제시한 안은 2년에서 2 반이 걸려요. 그럼 시간동안 우리 아이들의 교실을 어떻게 할지 답이 없는거죠.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안이 뭐냐면, 4가지 대안을 가지고 왔어요. 경기대 일대 폐교를 이용해서 폐교에 갔다놓는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저히 수긍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어요. 이해를 수가 없어요. 지금 어떻게 결정이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1월이 되면 애들을 명예 졸업을 시킨다는데, 졸업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차가운 바다 속에는 우리 아이들 명이 거기 있어요.

그런 매개체로 우리애들 교실을 남길려고 하는 목적이라면 목적입니다. 지금 ‘4.16교실 지키는 시민 모임이라고 해서 만들어져 있어요. 굉장히 많은 분들이 참여를 하셔 가지고 교육청에서 매일 피켓 시위해주시고, 교육청 뿐만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도 열심히 해주시고. 제가 알기론 진주에서 올라오시는 분도 계세요. 아무튼 우리애들 교실은 보존이 되야 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지금 현재까지는 교육청에 안을 제시한 , 거기에 대한 가타부타 얘기도 없고 그래도 스톱이 상황입니다. 답답한 상황까지 있는 거죠. 저희들 생각에 유가족들과 재학생들 부모님들간에 싸움을 붙이는 걸로 밖에 생각이 들더라구요. 누가 이기든지간에 이기는 쪽의 의견을 듣겠다. 교육청의 미온적인 입장도 그렇고. 아무튼 4.16교실 존치 문제에 여러분들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많이 응원해주시고, 많이 보내주세요


관객님 질문
나쁜 나라 영상에서 보면 특별법만 조금 부각이 되고, 미수습자 가족은 몇 가지 장면 밖에 안 되는데 일부러 그렇게 영상을 만드신건지, 유가족들과 미수습자 가족, 생존자 가족까지 같이 의견을 하나로 좁히기 어렵다고 하는데 지금 그런 작업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감독님 답변
세 명이 역할을 나눴었어요. 세명이 된 건 6월 15일쯤 된 거 같고. 저는 진도를 기록을 하고, 안산에서 생황을 하는 감독은 안산 분양소를 중심으로 기록을 하고, 또 한 명의 감독은 상황 상황별로 움직이면서 기록을 하자고 했어요. 처음에 저희가 5월 중순부터 6월까지 기록을 하면서 진도는 미수습자가 발견이 되는 게 어느 순간 멈춘 상황이었고, 유가족분들은 특별법 제정으로 인해서 국회에서 가족분들이 농성을 하면서 국조특위가 구성이 되는, 가족들이 움직여야만 국회의원들이 움직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진도보다는 어쨌든 상황들이 많이 있었어요. 움직임도 워낙 다양하게 많이 있었고. 그래서 저희 내부적으로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했는데요 진도에는 저희 말고 진도를 기록하는 세 분의 PD분이 계셨어요. 그러면 우리쪽은 유가족분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쪽으로 움직이시니까 우리는 그러면 특별법 제정쪽으로 기록을하면 어떨까하는 쪽으로 그렇게 정리가 됐구요. 체육관에 있는 미수습자 가족분들께도 6월 말에 저희가 상황이 여차저차해서 특별법 제정 과정으로 기록을 하게될 것 같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7월, 8월, 9월 중순까지 연출 세 명이 국회, 광화문, 청운동 기록을 하구요. 9회 중순이 됐을 때야 상황이 살짝 여유가 생겨서 진도에 내려가서 진도쪽 상황을 기록하는 그런 방식으로 갔었구요. 저희 방식 자체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정으로 몰아갔기 때문에 진도에 계신 분들을 계속 꼼꼼하게 기록하는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희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죄송스럽게 생각을합니다. 저희 상황에서는 그렇게 진행을 했습니다.

건우 아버님 답변
원래 나쁜 나라에 가장 첫 번째 편집본이 나왔을 때 저희 가족들이 시사회를 했습니다. 가족분들이 많이 오셔서 보셨는데, 지금처럼 재편집하고 재 심의받고. 지금 보신 내용에는 미수습자 가족들 모습, 재학생 모습이 빠져있습니다. 그 이유는, 본인들이 원했기 때문에. 그 분들도 똑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 분들의 바람대로 다시 편집을 해서 재 심의를 받고, 원래는 10월 29일이었죠. 개봉일자가.12월 3일로 변경된 상황이었구요. 미수습자 가족분들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굉장히 어려운 내용입니다. 굉장히 어려운거에요. 지금 4.16 가족협의회, 희생학생들, 그리고 희생된 선생님들, 화물피해자, 생존학생들, 일반인 희생자들. 저희 4.16 가족협의회를 만들었거든요. 이 분들도 똑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분들인데. 내 입장이 되봐. 우리 흔히 그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게 정말 무서운 얘기에요. 예를 들어서 일반 시민이 얘기를 해요. 그러면 선생님 제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그 얘기가 뭔 얘기냐면 당신의 자녀가 이런 사고로 숨져야지 나를 이해 하겠느냐, 그런 뜻이잖아요.


아픕니다. 제가 66 말띠생이거든요. 지금까지 50년을 살면서 이렇게 아파본 적이 없더라구요. 돌아가신 아버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보다 아프더라구요. 그래서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거거든요. 저희 아버지 돌아가신 , 다음날 우리 아들 녀석 건우 녀석이 태어났거든요. 굉장히 원망 많이 했습니다. 4 16. 그렇게 보고싶으셨냐. 당신 손주 그렇게 보고 싶으셔서 데려가셨냐 원망 많이 했는데,  녀석이 지금까지 꿈에 번도 타나났어요. 엄마한테는 나타났는데.

제가 일주일에 세네 정도 화성에 있는 효원이라는 납골당에 가서 보는데 그래서 그런지 나타나더라구요. 갈때마다 제가 받는 느낌이 있어요. 거기 지금 선생님하고 70 정도가 있는데 그런 얘기를 해요. 끝까지 싸워주십시오. 아빠, 엄마. 싸워주실 이제는 웃으면서 싸워주십시오. 그래서 그렇게 싸울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 마찬가지시겠지만, 제가 우리 아들을 위해 싸우는 이유는 하납니다. 진실규명. 그거는 이유가 아니고 당연히 해야되는 거니까요. 진실규명만큼이나 중요한 우리 아이들, 우리 아들의 명예를 되찾아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싸웁니다

제가 항상 이런 말씀 드려요. 마지막에. 저희 가족협의회 공식명칭이 ‘4.16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가족협의회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별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싸우고, 정말 목숨까지 내놓고 싸우겠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남아 있는 우리 아이들 자식 뿐만이 아니고 여기 있는 오늘 여기 같은 자리에 있는 학생들 지키기 위해서. 영웅 같죠? 영웅 아닙니다. 아시죠

저희가 싸움꾼이 될게요. 저희가 나가서 싸우는 군인이 될게요. 여러분들은 총과 총알, 그리고 우리가 싸울 있는 힘을 보태주십시오. 여기 같이 공간에서 이렇게 얼굴 마주보면서 얘기 있는 자체만으로도 아까 말씀드렸지만 저에겐 정말 너무나도 힘입니다. 잊지 않으시겠죠? 끝까지 기억해주시겠죠? 우리 아이들 교실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아이들 교실서부터 합동분양소가 있는 화랑유원지까지 40 정도 걸리죠. 걸어서. 길을 우리는기억과 약속의 이라고 부릅니다. 오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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