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진주같은영화제에 놀러오세요

영화인을 만나다 #01

이시화 촬영감독


영화제 때만 반짝 지역의 영화를 소개하는 것이 아쉬웠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멀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영화인들이 있다. 그런 영화인들의 소식을 함께 나누고 싶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꼿꼿이 영화에 대한 애정으로 하루하루 개척가처럼 현실이라는 대지에 영화라는 씨앗을 뿌리고 있는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보자. 그 첫 시간으로 <발 냄새>라는 단편 영화를 제작하고 지역의 작고 큰 영화 제작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이시화 감독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자기소개를 간단히 해달라.

<발 냄새>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단편영화를 제작했고, 최근에는 <남해의 향기>라는 웹드라마를 촬영했다. 집은 김해지만 창원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카메라 하면 육중한 이미지가 떠올라서 인지, 여성 촬영 감독이 낯설다. 그만큼 흔치 않아서 일지 모르겠다. 외고에서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는데 영화에 어떻게 빠지게 되었는지, 촬영에는 어떻게 입문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대학교에 와서 21살 때 단잠의 허성용 감독님을 알게 되었고, 허 감독님의 추천으로 한일 젊은이 영상 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일본에 가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는데 들판이나 신사를 고르고 시나리오를 받아 각색해서 촬영을 진행하는 과정이었다. 통역사도 한 분 붙어서 촬영에 언어의 문제는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영화라는 포맷을 알게 되었다.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포스트 프로덕션, 모든 과정이 흥미로웠다. 매력적이었다. 그 후에 단잠을 통해서 창원에서 프로덕션 하는 분도 알게 되고 박재현 감독님의 단편영화 촬영 때 촬영보조로 일하면서 경남영화협회 감독님들을 알게 되었다. 최정민 감독님이 <길> 제작부를 구할 때 친구를 소개해줬다. 그 친구가 먼저 영화협회와 일을 많이 했다.

영화제작아카데미 때 (오른쪽은 <Press>의 최정민 감독)


아무래도 경남 지역에서 제작되는 영화 편수가 많지 않아 처음 제작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대학교 3학년까지 하고 무작정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경험을 쌓고 싶었다. 서울로 가기 위해 냉면집에서 아르바이트해서 100만 원을 모았다. 친구와 보증금 100에 월 35만 원 하는 원룸을 얻어 월세는 반분하기로 했다. 대학교 때 응원단 활동을 했다. 그때 알게 된 동아리 선배의 친구분이 서울에서 영화사를 하고 있었다. 올라오면 연락하라고 해 서울에 가서 연락을 했더니 ‘네가 내 동생이었으면 때려죽여서라도 영화 쪽 일은 못하게 했을 거다’고 해 많이 속상했었다. 기대했던 분한테 도움을 받지도 못하고 내세울 경력도 없어 일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기술직에 여자 구인은 좀처럼 없었다. 그렇게 하릴없이 백수로 3개월을 보냈다. 생활비가 떨어졌다. 원룸이 반지하였다. 볕이 잘 들지 않아 오후까지 잠이 잘 온다. 오후 3~4시쯤 눈을 떠 한 끼를 먹고 24시 카페로 갔다.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밤새 영화 공부를 했다. 아침이 되면 원룸으로 가서 자고 다시 3~4시면 일어나 한 끼를 먹었다. 하루 한 끼, 커피 한 잔. 그렇게 3주 여를 더 보냈다.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독립 장편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에는 드라마 촬영 등 일거리를 찾아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JTBC <유나의 거리> 조명팀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골목길마다 조명을 전부 설치한 적이 있다. 그때 깨달았다. 빛으로 색칠하는 느낌. 촬영이란 카메라에 대한 기술적인 이해뿐만이 아니라 조명, 사운드 등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울에 올라가서 촬영 외에 조명 등 다른 경험을 쌓고 싶다. 그렇게 8개월을 서울에서 보낸 후 다시 내려왔다.

처음 촬영을 시작했을 때 많은 도움이 됐던 영화인이나 책이 있나?

서울에 머물 던 때 경남영화협회의 박재현 감독님 촬영 현장에서 만났던 <시험>을 연출한 이상진 오빠도 서울에서 한겨레 영화아카데미를 듣고 있었다. 유일한 영화 관련 인맥이라 나도 모르게 그 오빠랑 자주 연락했다. 카페에서 공부할 때 보던 책도 오빠한테 받은 책이다. 한겨레 영화아카데미 수료작품 촬영을 도와주면서 상경 후 처음 촬영 현장에 가게 됐다. 그때 만난 촬영감독(이상진오빠 동기이자 <시험>, <다정함의세계> 촬영감독)과 친해져서 지금까지도 단편영화 촬영이 있으면 도와주러 서울까지 가기도 한다. 나처럼 영화 전공은 아니었지만 영상에 흥미를 느껴 영화 촬영을 하게 됐고 지금 보면 생초보였는데 1년 만에 아이폰, 캐논, 소니 카메라에서 레드 카메라까지 여러 현장과 여러 장비를 다루면서 실력이 엄청 향상된 사람이다. 또 현장에서 같이 일할 때마다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고, 일이 있을 때마다 불러줘서 고마운 사람이다. <남해의 향기>나 경남영화제작아카데미 때 수료작을 촬영할 때도 많이 물어보고 도움도 많이 받았었다. 상경한 뒤 저 두 사람이 영화 촬영에 대한 물꼬를 트게 해 준 셈이다.

그 뒤로는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독립장편영화에도 참여하게 되고, 드라마 조명팀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일을 많이 하면서 일머리는 늘었지만 오랫동안 일을 한 사람들이나 영화과 출신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내가 이론적으로 부족한 것도 많이 느꼈다. 지금은 촬영 관련 책을 사서 보거나 유투브를 통해 혼자 공부하고 있는데 영화 관련 학교나 아카데미를 다녔더라면 좀 더 빠르게 익힐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은 영화 공부 하는 사람들에게 교과서처럼 여겨지는 <영화의 이해>나 <시네마토그래피, 촬영의 모든 것> 이란 책을 봤었고, 사실 아직 보는 중이다. 좀 두꺼운 책이다. 지인에게 선물받은 <필름 메이커의 눈>이란 책도 봤는데 그 책 덕에 구도나 샷을 고민하고 찍기 시작했다. 조명 촬영 등 기술적인 정보가 담긴 책도 보지만 감독이나 촬영감독의 인터뷰 글을 통해 '어떻게' 찍고 '왜' 그렇게 찍었는지를 보면서 영화에 대한 고민과 노력, 자세 등을 배우려 하고 있다. 그리고 유투브가 정말 좋은 인강인 것 같다. 촬영 전 테스트를 다 해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데 대신 유투브에서 누군가가 올린 테스트 영상이나 결과물 등을 보면서 정보를 얻거나 간접경험을 한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발 냄새>는 언제 촬영했나?

2015년에 학교에 복학했다. 4학년 2학기 때 학술제 때 영상을 내기 위해 만들었다. 당시 재미는 있지만 고민 없이 영상을 찍는 친구들이 많아서 고민을 하고 영상을 만드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 맞는 친구들을 모았다. 다행히 촬영장비는 베트남에서 유학 온 후배가 가지고 있었다. 촬영 진행비는 한국장학재단에 생활비 대출을 조금 받았다. 모든 걸 혼자 부담하려고 했는데 함께 했던 후배들도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15,000원씩 갹출해서 촬영비에 보탰다. 배우는 극 중 등장하는 아버지와 택배기사 분들은 실제 우리 아버지이고, 아버지의 동료분들이다. 극 중 딸로 등장하는 친구는 전문 배우는 아니지만 연기를 생각하고 있는 후배인데 학교 극단에서 연기하는 걸 보고 같이 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부모님을 따라 택배기사 부부모임에 갔다. 눈여겨봤다. 다행히 영화를 많이 보는 분이 계셨다. 그 후에 아버지와 동료분들이 일 마칠 때 술 한 잔 사드리고, 시나리오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께서는 ‘이 거 보다는 이게 나한테는 맞는 대사 같다’며 대사를 바꾸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현장에서 촬영 직전에 ‘시나리오를 몇 번 더 읽어 봤는데 딸래미의 의도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이대로 해줄게.’라고 하셔서 놀라고 고마웠다. <발 냄새>를 찍을 때가 감철이라 택배가 바쁜 철이었다. 출근 전, 퇴근 후 자투리 시간에 촬영을 했다. <발 냄새>는 아버지에게 선물을 해주고픈 마음에 만들었다. 덧붙여 아버지께 내가 하고픈 일이 이런 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그 영화를 만든 뒤로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셔서 집에 안 들어오는 일이 잦아도 이전보다 더 이해를 해주신다.

올해 여기저기 크레디트에서 이시화 감독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졸업 후 처음 맞은 올 한 해 어떤 일이 있었나?

2016년 올 한 해는 바빴다. 박재현 감독님의 다큐멘터리를 비롯 영화, 영상 등 20개 정도 작업에 참여했다. 특히 2015년에 최정민 감독님의 <프레스>에 스텝으로 함께 참여했던 분들과 <남해의 향기>라는 웹드라마를 촬영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최정민 감독님이 지역의 영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진행하신 일이다. 6부작인데 5회 차 촬영을 진행했다. 프리 프러덕션 기간 동안 준비를 많이 했지만 현장에서는 어려웠다. 다들 영화 제작 경험도 있었지만, 당일 찍을 수 있는 컷 수도 예상보다 적었다. 힘든 촬영이었고, 그만큼 배울 수 있었다. 영상, 영화 촬영 외에도 최정민 감독님이 진행한 영화 아카데미에서도 참가해서 영화 공부를 계속했다.

서울에 갈 계획인 걸로 안다.

2016년에는 일이 많아 서울에 가지 못했다. 올 해는 서울에 가서 조명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 2년 정도 생각하고 있다. 2년만 더 해보고 판단하고 싶다. 연출은 아직 자신이 없다. 아직은 프레임 안에 이야기를 담는 것이 좋다. 서울에 가 있는 동안에도 경남영화협회 감독님들이나 지역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내려와서 참여하고 싶다.

서울에서 쌓은 경험을 지역에서 영화로 녹여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하다.




웹 드라마 <남해의 향기>는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tr6dRZbg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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